2025년 10월 23일 목요일

옥중서신 1




나에게 유일한 영웅은 국민이다.
국민은 최후의 승자이며, 양심의 근원이다.




나라를 사랑하고 그 겨레를 사랑한 사람은 마땅히 찬양받고 존경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들은 그로 인해서 박해를 받고 누명을 쓴다.

그러므로 의롭게 살려는 사람은 보상에서 만족을 얻으려 하지 말고 

자기 삶의 존재 양식 그 자체에서 만족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는 반드시 바른 보답을 준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받아야 한다.




정치는 이념을 실천하는 행동의 과학이기 때문에 

정치인은 그 이념보다 그의 업적에 의해서 평가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government by the people이다. 참여의 정치다.

참여의 정치란 백성이 주인 되는 정치, 백성이 자기 운명을 자기가 결정하는 정치, 

백성이 스스로 신이 나서 건설하고 나라 지키는 정치, 백성이 그 속에서 발전하는 정치다.




우리 국민의 민주에 대한 욕구는 강력하며 이를 운영할 만한 민도도 충분하다.

다만 자유를 위해서 몸을 바치려는 용기와 의지가 부족하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결국 악의 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인물은 위대한 상식인인 것이며, 

위대한 생각은 완전한 상식 위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의 시절에 행복한 날을 기다리며 참아나가라는 것은 잘못이다.

행복한 날은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오더라도 그간은 불행해야 한다.

우리는 고난의 시절 그 자체를 행복한 날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의 목표를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두어야 한다.




양심에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유일한 길이다.

양심에 따라 사는 생만이 인생에서 성공의 진실한 가치를 보장하며, 

설사 실패했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해준다.

양심에 입각한 삶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건 실패하건 하느님의 축복이 따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패자의 운명 속에 태어났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운명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진리 속에 살다 죽은 사람만이 그 진리를 통해서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를 완성합니다.

진리란 우리의 양심이 받아들이는 인간의 길일 것입니다.




내가 6대 국회의원이 되고서 신문에 “우리는 서생적(書生的) 문제의식과 

상인적(商人的) 현실감각을 아울러 갖추어야 한다”라고 말해서 자주 보도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하려면 서생과 같이 양발을 원칙 위에 확고하게 딛고, 

상인과 같이 양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두 가지의 조화로운 발전을 기해야 합니다.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일생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투쟁한 일생이었고, 

경제를 살리고 남북 화해의 길을 여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일생이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옛날 청장년 때의 빈궁 시대에 비하면 행복하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 관계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선고,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 책 본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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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이었던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과거 교도소에 수용되었을 때 부인인 故 이희호 여사와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내가 읽은 책은 2024년에 출간한 3판 버전이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은 김 전 대통령이 1976년 3.1절 때의 
"민주구국선언사건(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 5년 형이 확정되어 
진주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시기에 쓴 편지.

제2장은 1977년 12월 김 전 대통령이 서울대병원 안의 특별감방으로 이송되어 수감 중일 때 쓴 편지.

제3장은 1980년 5.17 사건(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전두환 군부에 의해서 

사형이 확정되었다가 미국 정부의 개입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 청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할 때 쓴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추가로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김 전 대통령의 아들 

삼형제(김홍일, 김홍업, 김홍걸)가 각각 쓴 편지와 

김 전 대통령이 사망한 해인 2009년에 남기신 마지막 일기도 수록되어 있다.

(소소하게 사진 자료도 몇 장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인터넷 뉴스를 통해 우연히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궁금해서 한번 읽어보았다.

책의 존재 정도만 파악한 채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책을 접했는데 

처음에는 생각보다 너무 분량이 많아서 매우 당황했다.

시간을 내서 조금씩 읽었는데 완독하는데 한 달 넘게 걸렸다.;;;

이렇게 책이 두꺼운 줄 미리 알았다면 안 읽었을지도.


책을 읽은 소감은 전반적으로는 답답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답답함을 느낀 부분들은 김 전 대통령이 왜 교도소에 수감되었는지, 

수감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김 전 대통령의 가족 사항 등등 

책 본문에서 짧게나마 설명해 주지만, 당시 시대상이나 김 전 대통령의 

전반적인 일생이 정확히 어떠했는지 사전 정보가 많지 않은 상태에서 읽다 보니 

내용이 이해가 안 되거나 와닿지 않은 부분들이 많아서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기독교에 관한 내용도 생각보다 매우 많았는데 기독교에 관한 지식도 

아는 바가 많지 않고 크리스천이 아니기에 이러한 부분에서도 답답함을 느꼈다.

기독교에 매우 거부감이 있거나 관심이 아예 없는 분에게는 이 책을 추천해 드리기가 어려울 정도다.

(반대로 기독교에 관심이 있거나 크리스천이라면 유익하게 느껴지는 내용들이 많으니 적극 추천한다.)

왜 이렇게 기독교에 관한 내용이 많은지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으나 
김 전 대통령이 겪으신 수난사(受難史)를 뒤늦게 알고 나니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으셨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뒤늦게 이해가 되었다.


또 책 본문에는 문학, 역사, 경제, 철학 등등 

수많은 책이 언급되는데 거의 다 모르는 책들이라 답답했다.;;


답답함 외에 아쉬운 부분은 제2장 "못으로 눌러쓴 메모"에서 

일반에게 공개하기 어려운 것들은 "(생략)" 처리했는데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생략했는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는 점.;;;

그리고 이희호 여사의 편지 답장 내용은 "옥중서신 2"에서 따로 찾아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답장 내용을 바로 읽어볼 수 없기에 내용의 연결성이 떨어져 매우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답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흥미롭게, 유익하게 읽은 부분들도 적지 않았다. 

필기도구를 구하지 못해서 껌 종이, 과자 포장지 등에 

못으로 글을 썼다는 사실에 감탄을 하기도 하고

(못으로 쓴 메모는 감시원의 눈을 피해 아내인 이희호 여사에게 

몰래 전달했는데 메모가 한 장이라도 감시원에게 걸렸다면 

김 전 대통령이 어떤 고통을 받으셨을지 예상이 되었기에) 

또 김 전 대통령의 가족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어서 매우 인상 깊었다.


"아니, 감옥에서 이런 내용들을 썼다고?" 할 정도로 약간은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유익한 내용들이어서 나쁘지 않았다.

책에 수록된 편지들은 기본적인 안부 정도만 묻는 수준의 편지가 절대 아니다.

기본적인 안부 정도만 묻는 내용도 있지만 

그보다는 흥미롭고, 유익하고 심오한 내용들이 훨씬 더 많았다.

편지를 읽는 게 아니라 마치 백과사전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또 "정치인 김대중"이라는 느낌 외에 아버지, 남편, 종교인, 철학자, 역사학자, 

경제인, 투사(鬪士) 김대중까지, 김대중이라는 사람의 다양한 면면과 

박학다식(博學多識)함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옥중서신 2"는 

분량이 옥중서신 1 못지않게 많아서 당분간 옥중서신 2는 읽기가 어려울 것 같다.

아예 안 읽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적극 추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사전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기독교에 거부감도 없어야 하며 
정치적인 성향도 어느 정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위 세 가지 조건이 자신에게 맞다면 책을 한번 읽어보길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