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7일 금요일

쓴맛이 사는 맛




나는 비틀비틀하며 살아온 인생이다. 또 비겁하게도 살아왔다.

어디 내놓을 게 없는 사람이다. 내가 뭘 이룬 게 있다면 그건 나 혼자서 한 게 아니다.

여럿이서 다 같이 함께 한 것이다.

내 주변에 마치 자신이 몸뚱이인 것처럼 행세한 사람이 더러 있었는데 그건 오만이다.

혹시라도 나를 영웅처럼 묘사하는 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나는 누군가가 내게 도움을 받았다고 하면 손사래를 친다.

난 누군가를 도운 적이 없다. 도움이란 남의 일을 할 때 쓰는 말이다.

난 그저 내 몫의, 내 일을 했다.

설령 다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나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썩는 길이기 때문이다.

내 일인데 남을 위해 했다고 하면 위선이 된다.

그래서 난 신문과 인터뷰하면서도 절대로 자선사업가니, 

독지가니 하는 표현은 쓰지 말 것을 약속하고 인터뷰에 응한다.




당하고도 안 "달겨드는" 사람들은 싫다.

옳지 않으면 거부하고 저항할 줄 아는 국민이어야만 안전하고 편안한 사회를 지킬 수 있다.

민주주의는 부당한 권력, 부당한 명령에 불복하는 데서 출발한다.

불의에 대해 입을 다물면 공범이 된다.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일이고 내 책임이라는 자세로 떨쳐 일어나야 한다.




나는 좌우명 같은 것들을 없애려고 노력해 왔다.

이유는 하나다. 모두 "분칠"같아서다.

지식이라는 것, 뭘 안다는 것 또한 삶을 분칠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명언이나 좌우명 같은 것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것들이 결국에는 농약, 화학비료 같은 것이 되고 만다.

사람은 순박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소박함, 순박함 같은 것을 모두 날려버린다.

나는 그런 것들을 철저히 거부하며 살아왔다.

내 인생에 교훈이나 좌우명 같은 것은 없다.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중략) 모든 "옳다"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다.




철학도인 (채현국)선생은 우리 철학교육의 현실을 질타했다.

"철학도 외워서 가르치는 나라"라고 했다.

깨우치고 사유하기보다 책 몇백 권 읽는 것으로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는 현실 때문이다.

껍데기 지식으로 남을 가르치려 들고 군림하려 드는 것은 왕조 정치, 군사문화의 잔재라고 했다.

연장선상에서 유명인이 남긴 한마디나 화두 같은 걸 

앞세우는 것은 자신의 얼굴에 분칠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화려한 언사(言辭)는 말하자면 우상(偶像)과도 같다.

그 뒤에 숨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독선과 아집에 빠지지 말고, 

분칠하지 않은 날것의 순박함 그대로를 간직하고 살아가자는 얘기이리라.




값진 인생은 최고가 되는 게 아니라 꿈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음"의 증거요, 살아온 가치의 징표가 된다.

결국 인생의 우선순위는 높이가 아니라 순서다.

무엇을 내 인생의 제1순위에 둘 것인가.

제1순위가 정해지면 나머지는 뒤따라 절로 정해지는 법이다.

아니, 나머지는 전부 공동 2위가 된다.

(채현국)선생처럼 "살아 있음"이 1순위라면 세상살이는 매양 한가롭고 여유롭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전부 2순위이니 급할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삶을 사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살면 분명 행복하기는 할 것 같다.




갑자기 죽으면 편하긴 한데 나한테 미안한 일이다.

기껏 살게 해줬더니 삶을 우습게 안다고 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의 상태를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오래 사는 것은 싫다.

그런 삶은 진실하지 못하다. 자신에게 실례가 되도록 너무 오래 살면 안 된다.

형이 자살한 이후 줄곧 죽음을 생각해 왔으나 난 이제 죽음이 두렵지는 않다.

죽음을 불안과 공포라고들 표현하기도 하던데, 사실 사는 것 자체가 불안과 공포 아닌가?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죽음은 휴식이다.




덜 유명해야 한다. 유명하면 자유롭게 살 수 없다.




가난한 자의 특권은 의지밖에 없다.




세상이 살만하다는 말은 세상을 살아낼 용기와 꿈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




안 되는 놈은 안 되는 거다. 그대로 두는 쪽이 오히려 그 사람 삶에 낫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다 어른은 아니다. 나잇값을 해야 어른인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폭력적으로 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 든 사람은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 마구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얼마간 실수를 해도 어른이니까, 노인이니까 이해해 줘야 한다고 말한다.

젊은 사람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하는 얘기니까 그냥 들어!" 하는 식이다.

거기에 한마디 말대꾸라도 하면 "어디 어른한테!" 하는 식이다.

나이로 모든 것을 제압하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 본 적 없는 노인들이 사는 사회인 것만 같다.




자기 껍질부터 못 깨는 사람은 또 그런 늙은이가 된다.

저 사람들 욕할 게 아니라 저 사람들이 저 꼴밖에 될 수 없었던걸, 

바로 너희 자리에서 너희가 생각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봐주지 마라.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




돈 버는 비결은 약간의 상상력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집니다.

나눠 먹기를 잘해야 합니다. 구멍가게도 마찬가집니다.




(채현국)선생은 나아가 돈벌이가 "중독"을 넘어 "신앙"이 돼버렸다고 지적한다.

중독이라면 그게 나쁜 것이라고 의식이라도 하지만, 

신앙이 되어버리면 비판력을 잃어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돈벌이가 신앙이 되면 권력과 명예도 신앙이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맞는 얘기다.

돈벌이라고 하면 지식이나 육체는 물론 영혼마저 사정없이 내다 파는 세상이 됐다.

돈 앞에 신념과 지조를 판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좋은 벗이 되는 데 꼭 긴 세월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골동품은 골동품이어서 좋지만, 새것은 새것이어서 좋지 않나.




오늘날 예술가는 먼저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인문학적인 교양을 쌓고 어학 교육을 많이 받아서 내외적인 통풍이 되도록 해야 한다




미술에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

철학적이지 못한 미술가는 그림쟁이, 옛말로 환쟁이일 따름이다.




적게 쓰고 가난하게 살고 발전이란 소리에 속지 말고, 훨씬 더 소박하게 살라.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내가 썩는다. 공부를 하면 썩어도 덜 썩는다.

공부를 하면 남에게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만을 위한 공부는 나를 썩게 하고 그런 공부는 회의(懷疑)와 자신감의 상실을 가져와 나를 망하게 한다.

호기심을 갖고 활발하게 공부하면 열정이 생긴다.

그런 공부감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아첨 능력을 키워주는 공부는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

"자기 궤멸적(潰滅的)"인 공부는 자칫 나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




요즘 어디서나 "소통"을 강조한다.

여야 간에도, 세대 간에도, 노사 간에도 소통이 중요하다고들 얘기한다.

그러나 정작 그들 간 소통은 원만해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다들 제 입장에서 제 얘기만 하기 때문이다.

여당은 여당대로 제 얘기만 하고 야당은 야당대로 제 주장만 한다.

세대 간, 노사 간에도 마찬가지다.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만 하다 보니 접점(接點)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상대방 처지에서 얘기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심지어 상대방을 배려하면 진다고 생각하는 경향마저 있다.

물론 개인의 탓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늘 남을 이겨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제는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진짜로 살아남아 능력을 인정받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상대방의 사정과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성숙함과 미덕을 갖추기를 소망한다.




몇몇 노인들은 일당을 받고 시위에 참여하며 

여러 잡음을 만들기도 하는데, 노년의 삶이 그래선 안 된다.

모든 어린이가 제대로 훈육되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듯 

노인들은 존경받고 보살핌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노인들 스스로도 존경받기 힘든 행동들로 젊은 세대와 불화한다.

아름답게 늙는 것은 노인들의 권리이자 의무다.




늙고도 추하지 않은 것은 자연스러움이다.

늙은 사람은 젊은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

어떻게 하더라도 그건 그냥 젊은이들을 흉내 내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추하게 늙지 않으려 발버둥 칠 게 아니라 노년의 특장점을 찾아야 한다.

노년에는 노년의 멋과 아름다움이 있다.

흰머리나 자연스러운 주름 등이 완숙미의 표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지난날에 대해서는 자기 합리화 대신 자기 고백이 어울린다.

그것이 젊은이들에게 당당해질 수 있는 길이다.

그렇게 되면 노년의 삶이 추하지 않다.




우리 시대에 진정한 어른이 없다고들 한다.

사회학자 엄기호는 우리 사회에 "자신의 경험을 

후대에 전승하고 조언을 주고, 참조할 만한" 어른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과오에 대한 반성 없이 잔소리와 설교를 

일삼는 "꼰대"에게 사회적 존경이 따라올 수는 없다.

그러나 굴종과 타협을 강요하던 시대에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고, 

질곡의 시대에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또한 현실이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 식민지 35년도 지냈다. 동족상잔의 6·25도 겪었다.

이승만·박정희 군사독재도 지내왔다.

지금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한들 그때만 하겠는가.

자본주의의 병폐는 절대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극한의 사회 갈등 역시 절대 한순간에 봉합되지 않는다.

지나온 삶이 용광로처럼 펄펄 끓어도 타 죽지 않고 살아왔다.

우리의 삶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펄펄 끓는 용광로도 견뎌내는 그 뭔가가 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본다. 세상을 비관하면 매사 앞이 깜깜하다.

총체적으로 보면 세상은 차차 나아지고 있다.

그 속에 희망이 있고, 거기서 행복이 샘솟고 있는 것이다.




(채현국)선생의 삶을 짚어보고 기록하면서 선생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선생은 사업가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중에도 

민주화 운동가와 불우한 벗들을 남몰래 도와주었고, 

탄광 사고 피해자들에게는 계열사를 전부 팔아 보상해 주었으며 

사학재단을 운영하면서는 교육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시대의 어른"으로서 존경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와 가치가 있는 분이다.

관념과 자기 계발로서의 "조언"과 "충고"가 아닌 직접 몸으로 겪고 증명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어른의 진심 어린 가르침을 듣고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필자로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독자들과 이 소중한 경험을 나누고 싶다.



- 책 본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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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업가이자 효암학원의 이사장이었던 故 채현국(1935~2021) 님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써 장르는 에세이인데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집필한 책이다.

이 책을 집필한 사람은 채현국 님이 아닌 "정운현"이라는 분이 썼는데 

채현국 님이 자서전이나 평전 쓰는 것을 극구 싫어하셔서 

구술(口述)과 기록의 형태로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보통 에세이는 저자 본인이 직접 집필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독특하게 느꼈다.


우선은 채현국 님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은 아래 인터뷰 기사와 소개 글을 읽어주시길 바란다.

(아래 한겨레 인터뷰에 실린 내용 대부분이 책에도 수록되어 있기에 인터뷰는 안 읽어도 무방하지만, 

이 책이 나오게 된 동기가 된 인터뷰이므로 되도록 책을 읽기 전에 인터뷰부터 먼저 읽어보길 권장한다.)



[2014년 1월 3일자 한겨레 인터뷰 기사]

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8266.html



[채현국 소개]

채현국은 1935년 사업가 채기엽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방송국(KBS의 전신) 공채 1기 연출직에 입사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일이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둔 후 아버지의 탄광 운영을 돕게 된다.

그 뒤로 사업은 승승장구,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2위를 기록할 정도로 거부가 되었다.

그러나 1973년, 홀연히 직원들에게 재산을 모두 분배하고 사업을 정리했다.

"돈 쓰는 재미"보다 몇천 배 강한 "돈 버는 재미"에 빠져 돈 버는 것이, 

권력이, 명예가, 신앙이 되어버리기 전에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뒤에서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핍박받는 

민주화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활동 자금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1988년부터 효암학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해 효암고등학교와 

개운중학교를 뒤에서 돌보며 교육자의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을 내세우기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정체되고 부패하는 것을 

경계하며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위해선 거침없이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도 80 노구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여러 강연에 참석하고 있다.

좌충우돌, 종횡무진한 선생의 강연은 역사, 정치 예술, 철학까지 아우르며 청중들을 압도한다.

파격적이고 철학적이고 가식 없는 선생을 "거리의 철학자"로 부르는 까닭이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관찰, 2부는 전언(傳言), 3부 자전(自傳)의 형식으로 

1부는 채현국 님의 신념과 철학을, 2부는 채현국 님이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마지막 3부는 채현국 님의 인생사와 몇몇 지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채현국 님의 인생사를 먼저 알고 싶다면 3부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위에 언급한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수년 전에 읽고 참 감명받았었는데 

최근에 이 인터뷰 기사를 다시 읽어보다가 이분과 관련한 책이 혹시 있나 해서 찾아보니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서 이번에 한번 읽어보게 되었다.


책을 읽고 느낀 소감은 전반적으로 흥미롭고 유익했다.

이 책을 통해 채현국이라는 훌륭한 "어른"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었고 

주옥같은 말씀들도 많아서 아주 인상 깊었다.

그리고 책을 집필한 정운현 님의 생각이 담긴 여러 가지 내용도 참 좋았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채현국 님 본인이 직접 집필한 책이 아니라서 그런지 

예상보다 채현국 님의 구술(口述) 분량이 적게 느껴졌다는 점.

채현국 님 구술 분량보다 책을 집필한 정운현 님의 생각과 느낌 등을 담은 내용들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인생사를 책 뒷부분인 3부에 수록했는데 책 초반부에 인생사를 넣은 책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책 구성이 약간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또 백낙청, 리영희, 남재희, 이우환 등 여러 유명 인물이 채현국 님의 지인으로 나오고 

그분들과 엮인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나는 다 모르는 분들이라 온전히 와닿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와 채현국 님과는 거의 두 세대 차이가 나서 그런 듯 싶다. 세대 차이!?)

마지막으로 아쉬운 부분은 아니지만 이 책이 2015년 2월에 출판된 책이기에 

책이 출판된 당시 시대 상황이 어떠했는지 기억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기가 조금 더 수월할 것이다.


"어른"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고 싶으신 분은 이 책을 읽어보길 권장한다.

("어른 김장하"라는 제목으로 된 다큐멘터리를 재미있게 보신 분이라면 

이 책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