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9일 화요일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내가 지금까지 쉬지 않고 노력해 온 목적은 사람의 행동을 조롱하기 위해서도, 

통탄하기 위해서도, 모욕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바로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믿음을 증거와 조화시킬 줄 안다.




과학에서 "믿음"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긍정적인 "증거"에서 나와야 하며, 

주장을 증명하거나 논박하는 증거가 없다는 데서 나와서는 안 된다.




십자군 전쟁, 마녀 사냥, 노예 사냥, 홀로코스트를 초래했던 우리의 어두운 잠재력의 

조직적인 폭력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밖에 없다.

훌륭한 도덕성이 그 한 가지 필수 요소이나, 그것만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다.

두 번째 토대는 반드시 우리 정신을 이루는 이성적 측면에서 나와야 한다.

자연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지식을 얻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자연에서 얻은 지식이 수반하는 

그 논리적 함의들을 따르도록 이성을 엄격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비합리성, 낭만주의, 타협의 여지를 주지 않고 "진리"라 믿는 믿음, 

그리고 거기서 불가피하게 초래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군중 행동의 무시무시한 힘에 속절없이 휘둘리고 말 것이다.

이성은 단지 우리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큰 요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의 지배가 어김없이 수반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악하고 

험악한 집단행동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힘도 가지고 있다.

조직적인 비합리주의에 맞서는 이성의 선봉이 바로 회의주의이며, 

따라서 인간의 사회적·시민적 품위에 이르도록 해 주는 열쇠의 하나도 회의주의이다.




삶이란 우연적이고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하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두려운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중략) 현실이 견딜 수 없게 압박해 오면, 우리는 쉽게 미혹되어, 

점술가와 손금쟁이, 점성술사와 심령술사에게서 확신을 보장받으려 한다.

삶의 크나큰 불안들을 완화한답시고 던져진 약속과 희망의 말들이 맹습을 해 오면, 

우리가 가진 비판 능력은 무너지고 만다.




우리들은 각각 서로 다른 역사관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역사관이 모두 똑같이 타당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역사인 것도 있고, 사이비 역사인 것도 있다.

여기서 사이비 역사란 뒷받침하는 증거나 개연성이 없는데도 

주로 정치적이거나 이념적 목적으로 제시되는 주장을 말한다.




"과학"은 경험, 노력, 이성이 타당하다는 확신 위에 서 있지만, 

"마술"은 희망이 기대를 저버릴 리 없으며 욕망이 눈을 속일 리 없다는 믿음 위에 서 있다.




어떤 비주류 집단이나 비상식적인 주장이 대중에게 널리 노출되면, 

적절한 반박도 대중에게 널리 노출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최근에 "진보"라는 말은 상대를 깔보는 의미도 담게 되었다.

여기에는 "아직 진보하지 못한" 사람, 말하자면 서구 산업 사회에 의해 

정의된 삶의 가치와 기준을 채택하지 않은 자들에 대한 우월감이 담겨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을 조장할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자들이라면서 말이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상대를 깔보는 의미로 "진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을 추구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한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더 낫다든가, 

한 생활 방식이 다른 생활 방식보다 더 도덕적이라든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에는 많은 한계가 있으며, 양날을 가진 검과 같다.

현대 세계를 이룬 것이 과학이긴 하지만, 그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것도 과학이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내가 배운 게 하나 있다.

참모습에 비추어 보았을 때, 우리의 과학은 모두 원시적이고 유치하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하다.




우리 문화에서는 권위, 

특히 지적 능력이 높다고 생각되는 권위에 대단히 크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중략) 해당 분야에서 쌓은 전문적 식견 덕분에 

권위자들이 그 분야에서 옳을 가능성은 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언제나 확실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전문적인 식견을 가졌다고 해서 

다른 영역에서 결론을 끌어낼 자격을 꼭 갖추었다고 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거의 언제나 확실성을 원하고, 주변을 통제하고 싶어 하며, 

친절하고 깔끔하고 단순한 설명을 바란다.

이 모두가 어떤 진화적인 토대를 깔고 있을 수도 있지만,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다종다양한 사회에서 이런 특징들은 

극단적으로 실재를 단순화하고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과학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는 자연스럽게 얻는 것이 아니다.

훈련, 경험, 노력이 필요하다.

(중략) "사고"란 솜씨를 요구하는 일이다.

아무런 학습도 훈련도 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명료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학습도 훈련도 하지 않은 사람이 훌륭한 목수, 골프 선수, 

브리지 선수, 피아니스트가 되길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정신을 훈련하지 않은 사람들이 명료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길 기대할 수 없다.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을 찾고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욕구, 

어떤 문제에 대해 단순한 해답을 요구하고 아무 노력 없이 

해답을 얻으려는 성향을 우리는 쉬지 않고 억눌러야 한다.

어쩌다 단순한 해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자기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행동한다.

그 행동이 도덕적이냐, 비도덕적이냐의 여부는 오직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달려 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도덕성은 인간이 만든 것이며, 

인간이 만든 다른 것들처럼, 모든 종류의 문화적 영향 및 사회적 구성에 종속된다.

사실상 사람마다 집단마다 인간의 옳은 행동과 그른 행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주장하며, 

각각이 제시하는 도덕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서로 다르므로, 

전부 올바를 수는 없다고 말해 줄 것은 오로지 이성뿐이다.

음악에 절대적으로 옳은 형태가 있지 않은 것처럼, 

인간의 행동에도 절대적으로 옳은 행동은 없다.

인간의 행동은 서로서로 너르게 이어진 연속체이기 때문에, 

법률과 도덕률이 요구하는 것 같은 명확한 잣대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딱딱 끊을 수 없다.




신화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화는 시간과 인생의 큰 경과(탄생, 죽음, 결혼, 유년기에서 성년기로, 

노년기로 옮겨 가는 것)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치열한 노력에 관한 것이다.

신화는 과학과는 전혀 무관한 인간의 심리적이거나 영적인 본성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신화를 과학으로 바꾸거나, 과학을 신화로 바꾸는 것은 신화에 대한 모욕이며, 

종교에 대한 모욕이며, 과학에 대한 모욕이다.

창조론자들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신화가 가지는 의의, 의미, 숭고한 본성을 놓쳐 버렸다.

창조론자들은 창조와 재창조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졌으면서도, 그것을 망쳐 버렸다.




새로운 연구 분야들을 자극하고, 생명의 기원과 진화 방식에 대한 

지식을 미세 조정하면서 과학은 꾸준히 전진해 가고 있는데, 

창조론자들은 핀 머리에서 얼마나 많은 천사들이 춤출 수 있는지, 

방주에는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넣을 수 있는지 같은 

중세식 논쟁의 수렁 속에서 꼼짝없이 발버둥 치고만 있다는 게 서글프다.




모든 인간은 자기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해야 하고, 

누구도 타인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거나, 자기를 위해 타인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중략) 사람은 저 스스로 생각해야 하며, 무슨 권위가 되었든, 

특히 정부나 종교 같은 집단들의 권위가 

무엇이 진리라고 정하게끔 허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

도덕적으로 고귀하게 행동하는 방법으로 이성을 사용하는 사람들, 

결코 호의나 동정을 요구하지 않는 사람들, 

이들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사람들보다 성공과 행복을 찾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그대 안에 있는 최고의 선(善)의 이름으로 말하건대, 

가장 악한 것을 지닌 자들을 위해 이 세상을 희생시키지 마라.

그대를 살아 있게 하는 가치들의 이름으로 말하건대, 

자신의 본질에 이르지 못한 자들에게 있는 추악한 것, 비겁한 것, 

무분별한 것 때문에 사람을 보는 그대의 시선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라.

사람이 가진 고유한 자산은 직립한 자세, 타협을 모르는 정신, 

끝이 없는 길을 걸어가는 걸음이라는 그대의 지식을 잃지 마라.

"대충 이럴 테지", "별로야", "아직은 아니야", "전혀 없어", 

이런 희망 없는 수렁에 빠져서 그대의 불을 꺼뜨리지 말고,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불꽃으로 불을 피우라.

그대가 마땅히 가졌으나 아직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던 삶에 대해 

외로운 좌절에 빠져 그대 영혼 속의 영웅을 죽게 하지 마라.

그대 가는 길과 그대가 벌이는 싸움의 본성을 살피라.

그대가 욕망하는 세계를 얻을 수 있을 것이요, 

그 세계는 존재하며, 실재하고, 가능하며, 그대의 것이다.




과학 이론과 정치적 이념을 결부시키는 것이 교활한 짓이며, 

서로 필연적으로 수반하지 않는 것들이나 특정 이념에 봉사하는 것들을 

서로 연관시키는(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문화적·도덕적 쇠퇴는 

곧 다른 사람의 문화적·도덕적 진보라고 말하는 것) 일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신이라든가 다른 초자연적인 존재를 섬기고 

숭배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만, 과학은 물리적 현상과 관련이 있다.

종교는 신앙 및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관계하지만, 

과학은 경험적 증거와 시험할 수 있는 지식에 초점을 맞춘다.

과학은 과거나 현재에 관찰되거나 추론된 현상을 기술하고 해석하기 위해 고안되었고, 

반박과 확증에 열려 있는 시험 가능한 지식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방법들의 집합이다.

종교는 시험 가능하지도 않고 반박이나 확증에 열려 있지도 않은 게 확실하다.

방법론 면에서 과학과 종교는 서로 180도 다른 것들이다.




과학은 그냥 변화하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과거의 관념들을 토대로 누적되면서 미래를 향해 진보한다.

과학자들도 수없이 많은 실수를 저지르지만, 사실 그 실수를 통해 과학은 진보하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이 가진 자기 교정의 능력은 과학이 가진 가장 훌륭한 특징의 하나이다.

(중략) 과학은 스스로 일어나서, 옷을 툭툭 털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누구나 무슨 주제로든 표현할 자유가 있다는 것에 대한 내 입장은 이렇다.

정부는 어떤 조건이 되었든 누구나 아무 때나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결코 제한해서는 안 되지만, 

사설 기관들은 나름의 규정 내에서 누구든 아무 때나 표현할 자유를 제한할 자유도 갖고 있다.

(중략) 일단 어떤 주장이 대중의 의식 속을 파고들었다면, 

그것에 대해서 적절한 분석이 가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욱 넓은 관점에서 보았을 때, 

다른 이들의 믿음 체계가 제아무리 엉뚱하고 근거가 없고, 

해롭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덮거나 숨기거나 억압하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 국가의 힘을 빌려 억눌러서는 

안 되는 이유를 보여 주는 합당한 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어떤 이론이 우리의 가장 깊은 소망을 구현하고 있다면, 

그 이론을 성급히 받아들이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마를 줄 모르는 희망과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론은 그른 이론일 가능성이 크다.




위선의 해악은, 위선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인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보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중략) "위선자"란 다른 사람들의 결점으로 

주위를 돌림으로써 제 결점을 숨기는 비판자를 말한다.




주변 세계를 살피고, 무엇이 득이 되고 실이 되는지,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세상은 어떤 방식으로 운행되는지, 

현상의 이면에 숨겨진 법칙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이고, 

사람은 어떤 존재이고, 세계는 무엇이며, 

그 세계 속에서 나는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따위를 캐묻고 따지고 판단하는 능력, 

말하자면 인간의 지적 능력을 포괄적으로 표현한 개념이 이성(理性)이다.

과학자라면 이 이성을, 자연선택을 거친 오랜 진화의 산물로 여기겠고, 

종교인이라면 저마다의 신이 내린 선물로 여길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이성은 마음대로 갖고 말고 할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근본 조건이며, 인간의 본능에 속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이성은 얼마든지 잘못 사용될 수 있다.

수많은 오류를 저지르며, 잘못된 믿음과 독단을 낳고, 

나 자신은 물론 상대를 미혹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반면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면, 오류를 바로잡고, 

잘못된 믿음과 독단을 걸러 내고, 그릇된 주장을 비판하고, 미혹된 자들을 일깨울 수 있다.

나아가 불안을 주었던 것이 사실은 불안 거리가 아님을 밝힐 수도 있고, 

현재를 떠나 미래의 맹목적인 희망에 기대기보다는 

지금-여기의 현실을 보다 깊이 있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쪽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회의"란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길을 모색하는 방법"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 책 본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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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이비 과학, 미신, 창조론, 사이비 역사, 

홀로코스트 부정론 등에 대한 과학적인 비판을 담은 책으로써 

미국의 과학자이자 작가이며 회의주의 학회(The Skeptics Society)의 회원인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라는 분이 쓴 책이다.

원서는 "Why People Believe Weird Things"이며 

1997년에 초판이 나왔고 2002년에 개정판이 나왔다고 한다.

국내에는 2002년 개정판을 번역하여 2007년에 출간하였다.



[회의주의 학회 The Skeptics Society]

회의주의 학회는 과학과 사이비 과학, 역사와 사이비 역사, 

그리고 우리를 미혹하는 다른 많은 것들을 검증하기 위해 

1997년 만들어진 과학자, 역사가. 교수와 교사들의 단체이다.

회의주의 학회의 설립자인 마이클 셔머는 이 단체에서 발행하는 

과학 저널 <스켑틱 Skeptic>의 발행인 및 편집장을 겸하고 있다. 



책 구성은 아래와 같다.


- 제1부 과학과 회의 -

(과학과 사이비 과학은 어떻게 다른가?, 

이상한 것들을 믿게 만드는 스물다섯 가지 사고의 오류 등)


- 제2부 사이비 과학과 미신 -

(인간 복제와 냉동 보존술, 외계인에게 납치된 사람들, 

중세와 현대의 마녀 광풍 등)


- 제3부 진화론과 창조론 -

(창조론자를 잠재우는 진화론자의 스물다섯 가지 답변, 

연방 대법원에서 격돌한 진화론과 창조론 등)


- 제4부 역사와 사이비 역사 -

(홀로코스트 부정론과 부정론자들에 관한 여러 내용 등)


- 제5부 영원히 마르지 않는 희망 -



2025년 초에 온라인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는데 

사이비 과학이나 사이비 역사 등,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것들을 

사람들이 왜 믿는지 궁금했던 터라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인지는 몰랐고, 제목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독서를 미루다가 2026년 6월이 되어서야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 책을 확인했을 때는 분량이 생각보다 많아 매우 당황했다.

그래서 속으로 욕을 했다.;;;


그래도 끝까지 읽고 나니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장 좋았던 점은 이성(理性)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깊게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주장이나 사실을 판단할 때 한두 가지 증거만 보는 것이 아니라, 

폭넓고 다양한 증거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독서를 통해 "회의주의자"와 "과학적 회의주의"라는, 

용어와 철학을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좋았다.

평소 잘 모르거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개념들을 접할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해 보며 읽을 수 있었던 점도 흥미로웠다.

국내에서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왜곡", "일본군 위안부 문제 부정", 

"부정선거 음모론" 등 다양한 역사 왜곡과 음모론이 존재하는데,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사례를 읽어 보면서 이러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고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읽고 아쉬웠던 점은 가장 먼저 번역이었다.

번역이 매끄럽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아서 읽는 것이 전반적으로 불편했다.

문장을 여러 번 읽어야 이해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문장 구조로 번역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진입장벽이 꽤 높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 용어와 생소한 단어가 많이 등장해서 

책을 읽는 과정 자체가 전반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다.

처음에는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뜻을 찾아보며 읽으려고 했지만, 

모르는 단어가 워낙 많다 보니 결국 포기했다.;;;

대신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하기보다는 전체 내용을 끝까지 읽는 데 집중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능력 안에서 최대한 내용을 이해하려고 엄청 노력했다.;;;

특히 책 초반부터 시작해 「제2부 사이비 과학과 미신」의 중반까지는 읽기가 정말 힘들었다.

반면 「제3부 진화론과 창조론」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여전히 어려운 내용이 많았지만, 

이해되는 부분도 늘어나고 흥미도 생겨서 이전보다는 조금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또 주석(註釋)이 부족했던 점도 아쉬웠다.

책 하단에 별도의 주석을 통해 설명이 제공되었다면 이해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또한 본문에서 "-" 기호를 활용한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읽을 때 다소 거슬렸다.

차라리 괄호를 사용하거나 주석으로 설명을 덧붙였다면 조금 더 읽기 편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부분이 오류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p.241에서 "세계는 죽은 괴물의 시체 토막들로 창조되었다"라는 

신화를 가진 나라들 가운데 "한국"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읽으면서 "한국에 이런 신화가 있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주석 등을 통해 한국의 어떤 신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설명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AI에게 물어보면 관련된 정보가 일부 나오기는 하지만, 

책의 저자가 정확히 어떤 신화를 염두에 두고 해당 내용을 작성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책 자체가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원서는 1997년에 출간되었고, 이후 개정판은 2002년에 나왔다.

국내 번역본(2007년) 역시 출간된 지 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독자에 따라서는 내용이나 서술 방식에서 다소 오래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아울러 이 책은 사전 지식이 많을수록 훨씬 읽기 편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과 철학은 물론이고 역사,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서양사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진화론과 창조론,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등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있다면 읽기가 조금은 수월해진다.

(반대로 말하면 배경 지식이 없으면 없을수록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신념을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고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기 어렵다.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는 생각한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진입장벽이 꽤 높은 편이고 내용도 절대 가볍지 않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과 인내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도전해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