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 William Schofield caricature.
Frank William Schofield (15 March 1889 – 16 April 1970) was a British-born Canadian veterinarian, missionary, and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He is also known by his Korean name Seok Ho-pil (Korean: 석호필; Hanja: 石虎弼).
フランク·ウィリアム·スコフィールドカリカチュア。
英国生まれのカナダの長老教宣教師であり獣医師、細菌学者、衛生学者。 外国人で初めて国立県忠院にサドルされた大韓民国の独立有功者だ。カナダ長老派教会所属の宣教師スコフィールドは1916年、韓国が日本帝国の統治下に置かれていた時期にセブランス医学専門学校の教授として韓国に来た。1919年三・一独立運動の様子を撮り、その写真を海外に知らしめたことで民族代表34人と呼ばれた。また、華城提岩里・水村里村虐殺事件の現場を直接訪問した後、報告書を作成して日本の非人道的な行為を海外に暴露した。日帝の不義に対抗したところ、1920年に追放されたスコフィールドは、1958年に再び韓国に戻り、三・一独立運動の精神を訴えて独裁政府を批判し、韓国の腐敗や不正に立ち向かった。小児麻ひを病んでいたが、苦学で世界的な獣医学者となったスコフィールドは、韓国の貧しい学生たちや孤児の面倒を見ることに余生を捧げた。1968年、大韓民国建国功労勲章を受けたスコフィールドは、1970年4月12日、「私が死んだら韓国の地に葬られたい」という遺言を残して永眠し、韓国国立顕忠院に安置された。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1889년 3월 15일 ~ 1970년 4월 12일)는 영국 태생의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이자, 수의학자이며 세균학자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과 독립 후의 대한민국에서 활동하였으며, 제암리 학살사건의 참상을 보도한 그의 활동을 기념하는 뜻에서 “3·1 운동의 제34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가 만든 한국식 이름인 석호필(石好必, 나중에 한자를 石虎弼로 개명)은 오늘날 '스코필드'라는 이름을 쓰는 여러 외국인의 별칭이 되었다. 한국의 독립과 인권에 관련하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선교사 중에서도 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