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시간 또한 나의 시간이니까,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자신의 만화를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
만화는 욕구를 영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다.
(중략) 만약 아무런 욕구가 없고, 소원도, 미련도, 깊은 원망도 없는
득도한 스님 같은 사람이 만화를 그린다면, 불교의 탱화처럼 되고 말 것이다.
만화 속에는 그림을 그린 본인의 번뇌 혹은 응어리의 발산이 있다.
그것은 여러 번 말했듯이 마음 가는 대로, 생각한 대로 그리기 때문이다.
그런 욕구는 대체로 불만이 포함되어 있다.
그 불만은 주위 평가나 타인의 시선, 정치 혹은 자신에게 향하는 불평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랬으면 좋은데"라는 자신의 희망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만화는 그것을 그리는 것이다.
'생략', '과장', '변형'은 어린아이의 그림에 나타나는 특징이자,
낙서의 특징이며 그리고 만화의 모든 요소인 것이다!
만화는 낙서에서 시작된다.
아무 역의 매대에 놓여 있는 만화 주간지의 만화는
프로의 만화일 뿐, 만화의 전부가 아니다.
가령, 막대 인간도 만화라고 하면 만화다.
화장실의 낙서조차 엄연한 만화다.
낙서는 편하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일도 없고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수 있고,
아무리 그림이 서툴러도 편안하게 그릴 수 있다.
이것이 만화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만화가 가진 다른 그림과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좋은 영화, 책, 음악을 가까이해라.
만화만 읽지 말고, 영화와 소설에서 영감을 얻고,
폭넓은 스토리를 만드는 데 활용하라.
(중략) 자신만의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중략) 항상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략) 평소 꾸준한 공부도 필요하고, 만화책만 읽어서는 안 된다.
문학과 과학, 기행문, 평론집 등의 책과 친해지고 지식을 넓혀야 한다.
프로 만화가가 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재능과 노력에 좌우된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거나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어른이 되고 난 후 노력해서 성공한 예는 많지 않다.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사물을 옮겨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다.
(중략)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머릿속으로 데생을 한 것과 같다.
우리는 보통 데생을 할 때 종이와 연필을 사용한다.
그러나 항상 휴대하는 것이 아니므로, 없을 때는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형태를 머릿속으로 기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일로 얻게 되는 삶의 보람은 생계라거나 먹고살 수 있는
보증 혹은 편하게 돈을 벌고 싶은 욕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중략) 일단 계속 많은 양을 그리는 것이 좋다.
수년간 지속했는데 집필 의욕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면,
그때야말로 어떤 인연으로든 행운이 저절로 찾아올 것이다.
수년간의 집필 실적은 하늘과 땅이 인정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프로로 출발하려면 독특한 개성이 필요하다.
나에게 어떤 개성이 있는지는 그리는 본인 스스로는
절대로 알 수 없으며, 그것을 발굴하는 것은 제삼자다.
그러니 자기만족에 빠져서 자신감이 과다인 상태로 업계에 뛰어든다면,
많은 비판에 직면하고 좌절하게 된다.
만화업계는 예상 이상으로 살벌한 세계다.
만화의 완성도는 최초에 구상한 안이나 아이디어에 좌우된다.
그림을 그릴 수 있어도 아이디어가 좋지 못하면, 재미있는 만화가 될 수 없다.
"아이디어"는 사람을 웃기거나 감동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려고 만든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테마를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만화는 본래 농담 즉 조크와 유머를 파는 것이다.
그리고 독자에게 카타르시스, 쉽게 말해서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만화는 만화가 아니며, 얼핏 심각해 보이거나 침울한 분위기라도
큰 의미에서 어딘가 재미있는 부분이 있으면 역시 만화인 것이다.
이야기에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못하면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없고, 생생한 재미를 가진 이야기도 만들 수 없다.
이야기의 소재가 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각색만 해서는 좋은 이야기가 만들어질 리가 없다.
사회 문제, 가정 문제, 개인의 문제 등 테마는 무엇이든 좋으니
내 안에 있는 가장 표현하고 싶은 것을 그려보자.
장편 만화를 그리는 첫 번째 포인트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리는 것이다.
(중략) 길면 길수록 근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간도 걸린다.
그만큼 완성하면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며,
기본적으로 완성할 기회가 적은 분야다.
장편 만화의 또 다른 포인트는 무작정 길게 그린 것만으로 자만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중략) 아주 약간이라도 지금까지의 만화에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함을 추구했으면 한다.
그것이 장편 만화의 생명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장편 만화와 완전히 똑같은 것을 보기 좋게
그린다 해도 그것은 새로운 확장이라고 할 수 없고, 새로운 맛이 전혀 없다.
"어, 이것은!" 이라며 눈이 번뜩 뜨이는 새로운 기법을 찾아서
사용해 보는 것이 장편을 그리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만화를 그리면서 이것만큼은 절대로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기본적인 인권이다.
아무리 통렬하고 강렬한 문제를 만화로 호소하더라도,
기본적인 인권만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하나, 전쟁과 재해의 희생자를 조롱하는 내용
하나, 특정 직업을 멸시하는 내용
하나, 민족과 국민, 그리고 대중을 업신여기는 내용
이 세 가지만은 언제, 어떤 만화를 그리더라도, 반드시 지켜주기 바란다.
프로와 아마추어, 그리고 입문자를 가리지 않고 적용된다.
만약 이것을 어기는 만화가 있을 때는
작가와 독자가 서로 주의를 줄 수 있었으면 한다.
만화가로서 그림이 서툴러도 오리지널을 그릴 수 있고,
뭐든 좋으니까 하나라도, 8페이지든 12페이지든 몇 페이지라도 상관없으니,
아무튼 하나라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바로 만화가가 되려면 필요한 핵심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략) 이야기가 재미있고, 마지막까지 제대로만
그리면 누구라도 만화가가 될 수 있습니다.
내 만화는 일종의 교과서입니다.
젊은 친구들이 거기에 살을 붙이고 멋진 작품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 책은 흔히 말하는 만화가 지망생, 만화 동아리 같은
마니아가 본다면 분명 부족하게 느껴져 별로 흥미롭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좀 더 전문적인 책을 읽을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어디까지나 이 책은 초보자가 대상인 안내서다.
이 한 권으로 지금까지 그려본 적이 없었던 몇백,
몇천 명의 사람들이 만화를 그려보게 하는 것이 목적인 책이다.
- 책 본문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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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에서 만화의 신(漫画の神様 God of Manga)이라 불렸던
만화가 故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가 집필한 만화 작법서로,
2020년에 일본에서 출간한 手塚治虫のマンガの教科書-マンガの描き方とその技法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교과서-만화를 그리는 방법과 기법)을 번역해
2023년 7월 국내에 출간한 책이다.
데즈카 오사무가 생전에 한 번에 집필해서 낸 단일 신간은 아니다.
1977년에 출간했던 手塚治虫のマンガの描き方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그리는 법)을 저본으로 삼아
1950년의 漫画大学(만화대학),
1969년의 手塚治虫のまんが専科(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전과),
2005년의 明日を切り拓く手塚治虫の言葉201(내일을 여는 데즈카 오사무의 명언 201),
2014년의 手塚治虫 壁を超える言葉(데즈카 오사무 벽을 뛰어넘는 말)까지,
데즈카 오사무의 기존 저작과 관련 서적에서 일부 내용을
인용·발췌한 후 새롭게 재구성한 편집본이다.
즉, 책 여러 권을 단순히 합쳐 놓은 것이 아니라,
여러 서적에서 내용을 가져와 하나의 책으로 다시 구성한 것이다.
(이 중에서 明日を切り拓く手塚治虫の言葉201(내일을 여는 데즈카 오사무의 명언 201)과
手塚治虫 壁を超える言葉(데즈카 오사무 벽을 뛰어넘는 말)은
데즈카 오사무 사후에 출간된 책이다.)
책에는 만화를 그리는 방법에 관한 기초적인 내용,
흑백 만화를 그리는 데 사용하는 도구 설명,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방법, 이야기를 구상하는 방법,
얼굴, 동작 등 캐릭터를 그리는 다양한 방법, 데즈카 오사무의 인터뷰,
전 어시스턴트의 인터뷰, 만화 용어집 등등 다양한 내용들이 실려있다.
2021년에 데즈카 오사무의 자서전을 읽은 이후
약 5년 만에 다시 데즈카 오사무가 저술한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인터넷을 둘러보다 우연히 발견했는데
"만화의 신"이라 불렸던 데즈카 오사무가 쓴 만화 작법서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게 된 책이다.
[2021년에 읽었던 데즈카 오사무의 자서전 "만화가의 길"]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조금 아쉬움과 실망감이 남았다.
과거 데즈카 오사무의 자서전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책에는 데즈카 오사무와 동 시기에 활동했던 여러 일본 만화가와 그분들의 작품이 언급되는데,
정작 그분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거의 없었던 탓에 읽는 내내 답답함을 느꼈다.
또 책의 내용 대부분이 기초적인 설명이나 간단한 맛보기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아쉬웠다.
책 본문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전문적인 만화 창작에 관한
내용을 기대한다면 만족도가 낮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과거 흑백 만화 제작을 해본 적이 있었기에 덜했지만
흑백 만화 제작에 관심이 없거나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라면,
내용에 몰입하기 어렵고 답답함도 더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은 1977년에 출간된
手塚治虫のマンガの描き方(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그리는 법)을 중심으로
1950년과 1969년에 저술된 서적 등을 바탕으로 구성된 책이다.
따라서 2026년의 시점에서 읽어보면 상당히 오래된 내용이 많고
오늘날의 만화 제작 환경과는 거리가 있어 다소 구식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는 기대했던 것보다 아쉬움이 컸지만
그렇다고 흥미로운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방법이나 이야기를 구상하는 방법 등
스토리텔링에 관한 내용은 재미있었고
지금 시대에 읽어봐도 충분히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아주 오래전 직접 흑백 만화 원고를
그렸던 때가 떠올라 잠시나마 추억에 빠져들기도 했다.
흑백 만화 제작 과정을 배워보고 싶거나 스토리텔링에 관한
기초적인 내용을 가볍게 접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반면 깊이 있는 만화 창작 기법이나
현대적인 기술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또 데즈카 오사무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이나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2026년을 기준으로 보면 내용이 상당히 오래된 만큼
오늘날의 만화 제작 환경을 고려했을 때
적극적으로 추천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책이다.